번역된 단어들
경제라는 단어는 원래 돈에 관한 말이 아니었다.
경제(經濟)는 오래전부터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었다. 이 단어가 economy의 자리에 놓인 것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서양 문헌을 번역하면서였다. 한 번에 정해진 것은 아니다. 초기 사전들은 economy를 검약이나 살림에 가까운 말로 옮기기도 했고, 경제 대신 재물을 다스린다는 뜻의 이재(理財)를 선호한 이들도 있었다. 여러 후보가 함께 쓰이다가 경제가 남았다.
같은 시기의 다른 단어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회사(會社)는 근대 일본에서 서양의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넓은 의미의 모임과 단체를 가리켰다. 같은 두 글자를 뒤집은 사회(社會)와 함께 새로운 개념을 옮기는 데 쓰이다가, 시간이 지나 사회는 society, 회사는 company에 대응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같은 글자들이 순서만 바꾸어 서로 다른 세계를 맡았다.
은행(銀行)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1860년대 중국에서는 이미 bank를 은행이라고 부른 기록이 확인된다. 행(行)은 상점이나 상업 조직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당시 동아시아의 화폐에서 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흔적도 이 이름에 남아 있다. 일본에서도 근대 은행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부기(簿記)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일본어 발음 보키가 영어 book과 닮아 소리를 따서 만든 말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기라는 말은 서양식 장부법이 소개되기 전부터 일본에서 장부에 기록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사례가 확인된다. 이미 있던 단어가 새로 들어온 개념의 이름을 맡았다. 두 말의 소리가 닮았지만, 그 관계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새로 만들어진 단어, 옛 뜻에서 옮겨온 단어, 이웃 나라에서 온 단어, 이미 있다가 새 일을 맡은 단어. 지금 우리가 쓰는 경제의 언어는 서로 다른 경로들이 한 시기에 만난 결과다.
경제라는 단어로 economy를 말할 때마다, 백오십 년 전의 어느 선택이 함께 발음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