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쪽과 빌려준 쪽

왼쪽을 차변, 오른쪽을 대변이라고 부른다.

현금이 들어오면 차변에 적는다. 회사가 무언가를 빌린 것도 아닌데 '빌릴 차(借)'를 쓴다. 회계를 처음 배우면 대개 이유를 묻다가, 그냥 왼쪽과 오른쪽으로 외운다.

이 이름에는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다.

영어의 debit은 라틴어 debere, '빚지다'에서 이어진 말이다. credit은 credere, '믿다, 맡기다'에서 이어졌다. 복식부기가 정리되던 초기의 장부에서도 채무자와 채권자의 구분은 중요한 기준이었다. 채무자는 왼쪽에, 채권자는 오른쪽에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 장부가 다루는 대상은 사람 사이의 채권과 채무보다 훨씬 넓어졌다. 현금과 상품, 건물, 매출과 비용까지 같은 체계 안에서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왼쪽과 오른쪽을 부르는 이름은 남았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후반 일본이 서양식 복식부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debit과 credit에 대응하는 회계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용하는 차변과 대변도 이 계보 위에 있다.

그래서 지금의 차변과 대변을 한자의 일상적인 뜻만으로 이해하려 하면 오히려 이상해진다. 현금이 들어왔다고 해서 현금이 무언가를 빌렸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회계에서 차변과 대변은 거래를 기록하는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기능한다.

차변과 대변은 뜻을 잃은 것이 아니다. 그 뜻이 전제하던 세계가 먼저 사라졌다.